나그함마디 문서는 초기 기독교도와 그노시스파 필사본 모음으로 고문서로도 부르며, 1945년, 상이집트의 나그함마디 마을 인근에서 발견되었고, 대부분이 각각 2~4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50개 이상의 영적 문헌을 담은 13권의 고대 책입니다. 이들 경전의 발견과 번역으로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 역사와 그노스시파의 특징, 즉 『영적 지식』을 강조하는 1~2세기에 기원한 하나의 기독교 운동을 재평가하게 됩니다.
『그노시스』란 말은 직접적인 앎 혹은 비전의 경험을 통한 신의 지식을 뜻합니다. 오늘날 소중한 나그함마디 필사본 소장품은 이집트 카이로의 콥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나그함마디 문서』의 삼부론을 소개하며, 형언할 수 없고 불가사의한 분을 묘사하기 위해 말씀이 사용되는 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인식하거나 말하거나 보거나 이해한 이름 중 어떤 것도 그분에게 해당하지 않고, 그것이 한없이 영광되고 위대하고 존귀하다고 해도 그러하니라. 그러나 그분의 영광과 존귀를 위해 그분에게 영광을 드리는 자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이러한 이름들을 말할 수는 있느니라.
그러나 그분에 대해 말하자면, 그분 자신의 실존과 존재와 형상 속에서 마음으로 그분을 파악할 수 없고, 어떤 말도 표현할 수 없고, 어떤 눈도 볼 수 없고, 어떤 몸도 잡을 수 없나니, 그분의 위대하심은 탐구할 수 없고, 깊이는 이해할 수 없으며, 높이는 측량할 수 없고, 뜻은 제약할 수 없으니라.
이것이 태어나지 않으신 분의 본질이니, 어떤 것과도 닿지 않으며, 그것은 한계가 있는 어떤 것에 결합하지도 아니하니라. 오히려 그분은 인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인 얼굴이나 형상 없이 이러한 특성을 보이시니,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은 이러한 것들을 초월하시느니라.
만일 그분이 이해할 수 없다면 당연히 그분은 또한 알 수 없나니, 그분은 어떤 생각으로도 이해할 수 없고, 어떤 것 속에서도 볼 수 없고,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고, 어떤 손으로도 만질 수 없노라. 그분만이 자신의 형상과 자신의 위대함과 자신의 장대하심과 아울러, 자신을 사실대로 아시는 분이시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을 이해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 그분만이 자신의 마음이요, 자신의 눈이요, 자신의 입이요, 자신의 형상이시며, 자신에 대해 인식하시고, 보시고, 말씀하시며, 이해하시는 분이시니, 인식하거나 형용하거나 이해할 수 없고, 변치 않으며, 생명이시고, 기쁨이시며, 진리이시며, 즐거워하시며, 안식이시다.
그분이 인식하는 것, 그분이 보시는 것,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 그분이 지니고 계신 생각은 모든 지혜를 넘어서고, 모든 지성을 넘어서며, 모든 영광을 넘어서고, 모든 존귀와 자애로움과 모든 위대함과 어떠한 깊이와 높이도 넘어서시도다.
만일 본질상 알 수 없고, 내가 이미 말한 모든 위대함을 지니신 이분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풍성하신 자애로우심 속에서 지식을 주기 원하신다면,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느니라. 그분은 자신의 권능을 지니고 계시나니, 그것은 그분의 의지이니라.
그러나 위대하신 분이시요, 만유를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신 그분은 침묵을 지키고 계시느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그분은 자신을 형용할 수 없는 분으로 낳았으니, 스스로를 낳은 분이므로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사실대로 아시느니라.
그분의 위대함은 무한하며, 그분의 지혜는 찾을 수 없고, 그분의 권능은 헤아릴 수 없고, 그분의 달콤함은 맛볼 수 없음으로, 자신의 경탄과 영광과 찬양을 받을 만한 것을 낳으시느니라. 그분은 낳음의 방식으로 자신을 투사하시니, 그리하여 그분은 공경과 놀라운 영광과 사랑을 지녔노라.
그분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놀라워하며, 공경하고 사랑하며, 아들이 있는 분이시다. 그 아들은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에 관해 침묵하며, 형언할 수 없는 분 안에 있는 형언할 수 없고 보이지 않으며, 이해하거나 인식할 수도 없는 분 안에 있는 인식할 수 없는 분이시다.
이처럼 이미 말한 대로, 아버지는 태어남이 없이 영원히 존재하시며, 자신을 아시고, 자신을 낳으시고, 생각을 지니고 계시니, 그 생각은 자신에 관한 생각, 즉 자신에 관한 인식이니라.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침묵이요 지혜요 은혜니라.
에온의 방사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이 존재하는 조건과 특성 속에 존재하느니라. 그러므로 그것은 무수한 에온을 낳는 속에 존재하느니라. 그들은 또한, 교회가 지닌 특성과 조건에 의해 수많은 방식으로 낳게 되느니라. 이것이 그들이 서로, 그리고 그들에게서 아들에게로 나온 자들과 더불어 만드는 조직을 이루나니, 그들은 아들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느니라.
따라서 마음은 그분을 인식할 수 없으며, 그분은 그곳의 완전함이요, 어떤 말로도 그들을 표현할 수 없고, 형용하거나 이름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느니라. 그들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인식할 능력이 있느니라. 그들은 그곳에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곳의 그들에게 조직의 방식과 크기는 표현할 수 없고, 셀 수 없이 많으며, 태어나지 않았고, 이름 없고, 이름 부르거나 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분의 기쁨과 반가움은 무한하노라. 그것은 아버지의 충만함이니, 그분의 풍요는 에온을 낳느니라. 그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생각 속에 있고, 아버지는 그들 생각과 거처와 같노라. 그 종족이 확립되었을 때, 만물을 다스리는 분께서 결핍된 자들을 취하고 붙잡아 낳기를 원했으니, 그분은 자신 안에 있는 자들을 낳으셨느니라.
그러나 그분은 그대로이므로, 그분은 풍성하게 흘려보내는 물로 인해 줄어들지 않는 샘과 같으시니라. 그들이 아버지의 생각 속에 있었을 때, 즉 숨겨진 심연 속에 있었을 때, 그 심연은 그들을 알았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있는 심연을 알 수 없었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고, 그 밖의 다른 것들도 알 수 없었느니라.
즉 그들은 아버지로 인해 있었으며, 자신의 힘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노라. 그들은 오직 하나의 씨앗으로 존재하여 태아처럼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느니라. 그분은 말씀처럼 그들을 낳았으며, 그들은 그분이 낳으려는 자들이 존재하기 전에 씨앗처럼 존재했느니라.
최초로 그것을 생각하신 아버지는-그들이 그분을 위해 존재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존재하게 하고, 다음엔 그들이 정신, 물질로 그분의 생각 속에 존재하게 하며, 또한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게 하려고-씨앗처럼 한 생각을 씨 뿌렸느니라.
이제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기 위하여, 그분은 존재하는 아버지를 알 수 있도록 그분은 은혜롭게도 최초의 형상을 주셨느니라. 그분은 존재하는 것은 그 이름을 통해 존재한다고 선포한 목소리를 통해 그들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셨나니, 그들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그 이름을 지녔으나, 그 이름은 너무 고귀하여 그것을 알 수 없었느니라.
그 유아는 태아의 형태로 있는 동안 자신을 씨 뿌린 분을 보기 전에는 자족했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을 찾는 유일한 임무가 있고, 그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존재하는 분의 본질을 알아야 했느니라.
그러나 완전한 아버지는 선하기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단지 그분의 생각 속에만 존재했으나, 그 후 그분은 그들의 존재를 허락했듯 그들이 존재하는 분, 즉 자기 자신을 영원히 아시는 분을 알 수 있는 은혜도 허락하시며, 그들은 이곳에 태어났느니라. 그들이 태어났을 때 그들은 빛 속에 있었나니, 그러므로 그들을 낳으신 분들을 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