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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한 이후 개성은 오백 년 간 고려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개성은 북쪽의 송악산을 포함해, 네 개의 산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입니다. 예성강과 임진강이라는 두 개의 강에 둘러싸여, 개성은 교통의 요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 『개성 역사 유적지구』는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세계유산은 궁궐, 고분군, 방어벽, 문, 천문 및 기상 관측소, 두 개의 학교 (국가 관리의 전문적인 교육기관을 포함), 그리고 기념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개성의 12개 유적지가 『지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철학적, 정신적 가치』를 구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선포해 영적인 계발의 기반으로 삼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유교를 국정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교와 유교가 함께 발달했고, 이러한 통합은 유적지의 기념물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개성 남대문은 유명한 랜드마크로, 그 구조는 하단의 석축 위에 목조 건축물이 올려진 것이 특징입니다. 남대문은 개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문 역할 외에도 시계 역할도 했습니다. 만월대는 고려를 건국한 초대 왕인 태조 왕건의 생가에 지어졌습니다. 만월대의 중심 건물이자 정전인 회경전은 가로 43m(141피트), 세로 23m(75피트)에 달하는 2층 건물이었습니다. 만월대의 서쪽에는 개성 첨성대가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 역할을 했다.고려 성균관은 유교적 대학으로 고려와 조선 왕조 동안 최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여기서 유교적인 소양을 지닌 정부 관료를 양성했습니다. 선죽교와 숭양서원, 표충사는 고려의 존경받는 유학자인 정몽주와 관련된 유적입니다. 깨달은 스승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따라 이 유서 깊은 도시에 황금시대의 영광이 다시 오길 바라며 평화가 한반도와 전 세계에 퍼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