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노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고대 철학자에 속합니다. 그의 철학에는 세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유일자, 지성 그리고 영혼입니다. 그는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나기 오래전에 가장 가까운 제자인 포르피리오스와 아멜리우스에게 자신의 저술을 수집하여 수정, 편집하는 광범위한 작업을 맡겼습니다. 그리하여 플로티노스의 소중한 통찰을 수많은 세대에 전하는 『여섯 엔네아드』가 나왔지요. 오늘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는 제1엔네아드 4편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12장 “삶에 필요한 즐거움은 음탕한 자의 쾌락이나 어떤 육체적 만족일 수 없습니다. 그것을 위한 자리는 없고 그것은 행복을 막습니다. 반드시 선이 있는 곳에만 그런 즐거움이 있을 수 있고 즐거움은 움직임에서 나오지 않으며 작용의 산물이 아닙니다. 선한 모든 것은 바로 현자에게 있고 현자는 그 자신에 있으며 자신의 기쁨과 만족, 서고 움직이지 않음에 있지요. 따라서 그는 항상 유쾌하고 삶의 질서에는 항상 문제가 없습니다. 그의 상태는 항상 행복하며 악으로 알려진 어떤 것도 그 상태를 흔들지 못합니다. 단지 자신 그대로이며 변함없이 현자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현자의 삶에서 다른 즐거움을 찾는다면 그가 찾는 것은 현자의 삶이 아닙니다.”
14장 “사람, 특히 현자는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 아닙니다. 사람이 몸과 떨어질 수 있고 그 허울뿐인 가치를 무시할 수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행복이 살아있는 육체에서 시작하고 끝난다는 생각은 어리석지요. 행복은 삶에서 선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행복에는 영혼이 중심이며 영혼의 행위이지만 모든 영혼이 그렇진 않지요. 그것이 성장하는 영혼과 발전하는 영혼의 특징은 분명히 아니며 그것은 즉시 육체와 연결될 것입니다. 강력한 골격과 건강한 체질, 성질의 만족할 균형이 반드시 행복을 주진 않습니다. 이런 이점이 지나치면 사람이 망가지며 그 힘 안으로 점점 끌려갈 위험이 있습니다. 가장 고귀한 쪽을 향한 다른 방향으로 일종의 반대 압력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는 줄이고 경시해야 진실한 사람이 나타나며 외양 뒤에 있는 사람이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