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다 찰턴은 4살 때 부모와 함께 영국 런던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녀는 18살 때 현대 무용가로 공연하기 시작해 20년간 계속했습니다. 그 후엔 15년간 인도에서 지내며 동양의 신비주의와 명상을 연구했습니다. 힐다의 가르침은 자제와 베풂, 용서, 조건 없는 사랑과 신을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힐다 찰턴의 저서 『살아있는 성인들』은 그녀가 뉴욕 시의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했던 특별한 강좌 모음집입니다.
자기 삶의 일부였던 신성한 사람들과 성인들에 대해 사랑과 지혜 및 유머를 담아 말합니다. 이 책은 또한 진리와 용기, 사랑의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 가르침을 포함합니다. 이제부터 『살아 있는 성인들 1장: 예수님의 정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다가올 시기에 대해 가르치려고 지구에 왔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말하고 준비시켜 우리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제게 그분은 요기 중 요기입니다. 때론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려 한쪽으로 머리를 숙인 모습을 보면 그분이 요기 중 요기임을 잊어버립니다. 그분은 요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물 위를 걸었음을 압니다.
힘을 가졌음을 압니다. 그분이 청년기에 티베트에 갔던 걸 압니다. 그분이 글래스톤베리를 방문해 그 해변을 걸었음을 압니다. 제게 그분의 모든 말씀은 지고의 진리이며 자유로 이끕니다. 제자에게 가르친 그분 뜻을 읽으면 그 말씀에 완전히 감탄합니다. 그 조언이 살아있다면 그것은 유효합니다. 마치 마법처럼 작용하니 놀랍고 흥미롭지요.
그것은 2천 년 전처럼 지금도 살아있고 작용합니다. 설교자들은 그분 말씀을 종종 지루하게 만듭니다. 오늘 밤은 지루하지 않길 바라며 제가 지루하다면 예수님의 용서를 빕니다. 오, 즐거운 푸른 빛이 제 책에 비치는 걸 봤어요. 멋지군요. 절 용서하신 것 같아요. 게다가 부모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요합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사랑으로 읽으면 그분 말씀은 정말 희귀한 보석이 되어 삶을 수월하고 꽃들과 성공이 있는 초원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저는 라마 크리슈나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이렇게 세 분만 알았습니다. 니티야난다, 마하데바난다, 사이 바바 등 수많은 분은 만나지 못했죠. 비록 당시에 니티야난다께서 제 방에 나타나 제 호흡법을 도와주기도 하셨지만요.
니티야난다가 『나는 히말라야의 요기다. 그러니 그녀가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나는 도울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제가 마하데바난다를 만났을 때도 그는 『당신 종교는 뭔가요?』 『세례를 받았나요?』라고 묻지도 않았어요. 예수님이 내려와 『너는 세례 받았느냐?』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좋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맙소사, 전 세례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반대하지 않아요. 단지 사람들을 철길로 밀어 버리는 이 세상의 어두운 사악함만 빼고요. 그것은 반대합니다. 다른 것은 괜찮아요. 어떤 것이든 숭배하고 싶다면 그 방식대로 숭배하세요. 할 일을 하세요. 규칙에 따라 가고 싶다면 그것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안전하게 느끼게 해준다면 하세요.
행성의 존재들과 제가 언급한 모든 교사는 모두 한 분의 신을 위해 조화롭게 일합니다. 오직 여기 아래에서만 소그룹들로 나누어 여러 이름을 붙이고 분리하지요. 오늘 밤 여러분 마음에 약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어떤 분리가 있다면 다 쓸어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하늘을 바라보고 무한하고 절대적인 전능한 신 안에서 멀리 나아가고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묶이지 않음을 압시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 안에 들어갈 수 있고 여러분은 이해합니다. 발리가 오늘 밤에 교회에 가고 싶었기에 일찍 왔습니다. 그것이 그녀를 묶을까요? 아니요, 더 확장시킵니다. 유대교 예배당에도 갈 수 있고 거기서 집처럼 편안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숭배하는 것은 유일신이 아닙니까? 이슬람 사원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도 유일신이죠?
인도에서 이슬람교 성인을 만났습니다. 당시 봄베이의 타지마할 호텔에서 고전 무용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와서 제 춤을 봤어요. 당시 저는 유대교나 기독교는 이해해도 이슬람교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어요. 이 위대한 성인은 하루 종일 봄베이 해변에 있는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에 앉았다가 저녁에 다시 그의 사원으로 돌아갔어요.
저는 그와 같이 앉아 말했어요. 『무엇을 숭배하나요?』 그가 말했지요. 『나는 하나의 빛, 하나의 힘을 숭배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나도 그걸 숭배하는데』 그래서 이슬람교와 일치하는 게 있었지요. 이것을 이해합니까? 그날 제 시야는 넓어졌고 다른 것을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하니 자신이 더 커지고 나아진 걸 느꼈죠.
이 복된 분들에겐 어떤 분리도 없습니다. 그들이나 예수님께는 없죠. 진리를 살아가면 당신 신분이 무엇이든 당신은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그가 제게 누군지 물었을까요? 아니요, 그저 와서 사랑했죠. 『오, 사랑의 주님』이란 짧은 노래를 아나요? 동양에서는 치유사가 마을로 방문합니다. 그가 환자를 만지면 갑상선종이 줄고 내반족이 고쳐지지요. 보고 있으면 대단했어요.
우리 셋이 그를 보려고 그곳에 갔지요. 힌두교도와 여호와의 증인과 절대자를 숭배하는 저였죠. 그들이 그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마치 세 명의 미친 자처럼 춤을 췄지요. 길을 걸어 내려가며 노래를 불렀어요. 『오, 사랑의 주님』 여기 그 노래를 들어본 분이 있나요? 같이 불러봐요”
♪오, 사랑의 주님/ 오, 사랑의 주님/ 오, 사랑의 주님/ 날 사랑해 주시네// 지금 무엇을 볼까?/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 우리는 노래하고/ 성모님은 아기를/ 흔들어 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