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킹스포드 박사는 1880년대 영국의 통찰력 있는 신지론자로, 말을 할 때부터 투시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 자신도 요정계에서 왔으며, 운명을 이루기 위해 인간으로 태어날 허락을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어린 13살에 안나는 『베아트리스: 초기 기독교인의 이야기』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 지혜는 다음 글에 나타납니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만을 연구하고 추구하는 자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들은 욕망의 대상을 잃고, 언제나 안절부절못하고 불행해진다』 영성과 채식에 대한 자신의 흥미를 지키면서 안나 킹스포드는 의사가 됩니다. 그녀는 영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면서 동시에 동물에게 실험을 하지 않고 의대 교육을 졸업했습니다.
그녀의 졸업 논문 주제는 채식주의와 윤리학이었습니다. 킹스포드 박사는 이것으로 호평받은 책인 『식생활의 완전한 길』을 저술하고 출간합니다. 킹스포드 박사는 내면의 영적, 신비적 체험을 오랜 친구인 에드워드 메이트랜드와 함께 몇 권의 책을 공동 저술하며 계속 기록했습니다. 또한 동물 권리와 여성 권리의 옹호자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완전한 길 혹은 그리스도 찾기』는 기독교와 신지학의 영적 가치를 모든 사람이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그리스도 원칙과 결합합니다.
이제부터 이 책의 다섯째 강연에서 신의 참되고 영원한 본성에 비해 덧없는 물질세계를 소개하겠습니다. 무수한 물질 형상을 통해 이런 높은 세계가 나타나는 동안 우리7의 진정한 본성은 내면의 신성한 성령이 신과 재결합한 후에만 해방됩니다.
다섯 번째 강연: 존재의 구조
3부
이처럼 물질적이고 덧없는 사물의 학문이 실재하고 영원한 대상의 이미지를 제공하듯이, 현상적 지식도 신성한 영적 지식에 대해 그렇다. 소우주와 대우주 또한 그렇다. 세포와 인간, 행성과 태양계도 그렇다. 만물에서 창조의 순서는 참으로 신비로운 창세기의 첫 장에서 시작하며, 넷째 날에 작업한 태양의 (핵소체 혹은 우주 중심 성령의) 각각의 표상은 우주의 모든 요소의 분극에서 시작한다. 「큰 인간」으로 신비롭게 불리는 전체 우주의 시작도 그렇다. 핵소체는 대우주의 신이다. 핵소체는 신적 본질이며, 그것과 그 안에는 생명의 영이 움직이는 천상의 물이다. 그것이 핵소체이며, 원형질의 액체는 행성 간과 분자 간에 나타난 에테르이고 빛과 열과 전기의 매개체이다. 끝으로 세포막은 그 가시적이고 유형적인 상태 안의 물질이다. 이 넷 가운데 신과 본질만이 영원하고 완전함을 알고 있다. 물질과 아스트랄 에테르는 파생되어 상대적이다. 마지막에는 무한한 본질이 자신을 개체화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개체와 유한한 형태가 생겨나 스피노자가 방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이들은 본질에서 바다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소멸하고, 절대 존재하지 않는 형상이다. 유한한 것엔 스스로 존재하는 개별성이 없다. 본질의 무한한 생산력은 무한한 종류의 특정한 유한한 형태를 낳아야 하므로, 유한한 개체가 실제로 존재하지만 제대로 된 실상은 아니다. 본질만이 유일한 실체이다. 하지만 본질은 전체로서 실재하며, 분화한 본질 또한 실재한다. 개별화된 본질도 여전히 본질이다. 각각 분리된 부분은 그 형상화 측면에서 유사한 변화를 겪는다.
스피노자의 견해와 관련하여 생긴 오류는 개인의 본질적인 자아에 방식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것에 있다. 이 자아는 실제로 신성하고, 「창조」로 알려진 과정에서 개체성을 얻었고, 반면에 신은 존재와 인격 모두에서 영구적이며, 물질의 발현 방식에 관해서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덧없고 비현실적인 이 물질적 방식은 힌두교 철학에서 마야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현상이나 환상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에게 실재하고 영구적인 것은 무한한 전체로, 그리고 무한히 분할되어 둘 다 동시에 존재하는 그 신성한 자아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런 견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 신비와 불교 비전의 조화에 달려있다.
기독교 신비는 모든 구원받은 개인이 얻은 인격의 변치않는 영속성을 가르치고, 불교 비전에서 인격은 존재의 영역에 속하는 환상이며, 지상에서 영원한 존재는 하나뿐이며 반드시 비인간적이라고 주장한다. 설명하자면, 각 개인에겐 두 개의 인격이 있는데 하나는 현상적이므로 일시적이며, 다른 하나는 본질적이므로 영구적이라는 것이다. 불교는 참으로 전자의 덧없음을 선언하는 반면, 기독교는 참으로 후자의 영원성을 선언한다. 후자인 본질적 인격을 상징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개체의 총합과 같아 - 그것을 움직이는 힘과 그것을 구성하는 본질 -유기적 세포 안의 핵소체에 해당한다. 반면에 천박하게 진짜로 받아들이는 거짓된 외적 인격은 세포 분열 때 사라지고 흩어지는 원형질체에 해당한다.
영혼과 영혼 간의 평가는 결국 현상을 통과하는 동안 영혼이 융합한 사랑의 정도에 따라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그 본성이 지극히 강렬하고 신성하기에, 단순한 외적 인격을 넘어 진정한 존재로 스며들 것이며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모든 작고 하찮은 사랑, 관심, 매력, 인연, 관심사는 전적으로 지상에 속하며, 육신이 분해되기 시작하면 아스트랄 대기로 버려진다. 이 대기에서 각 입자의 생명력이 허락하는 한 그들은 계속 존재한다. 조직의 실질에서 세포의 분해를 통해 원형질 소체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법칙은 지속된다. 영혼은 일시적인 인격을 경험하는 동안 어떤 환생에서든 법칙의 본질을 습득하게 되며, 즉 존재는 자신의 칼파를 마치고 마침내 존재로부터 구원받을 때 결국 영구적인 인격에 의해 흡수되고 계속 존재하게 된다. 법칙은 극히 중요하고 파괴될 수 없으며, 신성의 무효화할 수 없는 속성을 가졌다. 이 때문에 천국에서 모든 것은 개별적이며, 인격의 사상은 무한한 인간의 모든 분자에 내재하여 있고, 열반을 이루는 통일성으로 회귀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구원은 창조의 최종 목적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존재는 실존으로 돌아가고 현상은 본질로, 물질은 영으로 돌아간다. 우주는 완전한 안식으로 돌아가고, 신은 형상화 작업을 쉬게 된다.
사실 불멸을 구성하는 진정한 인격을 획득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파멸은 인간이 영속성을 얻는 데 실패한 것으로, 따라서 해체와 소멸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신에서 나왔기에 본질의 소멸은 불가능하다. 신의 본질로 구성되어 있고 본성이 아닌 형태에 의해서만 구분되는 피조물은 창조주의 잠재력을 소유하며,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핵소체, 즉 신성한 성령은 핵소체나 영혼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모든 실체는 태초부터 성령이 스며들고 가득하며 충만하기 때문이다. 비록 핵소체나 영혼의 요소가 더는 흩어지지 않고 수렴하여 그 본질에 내재한 잠자는 신성한 빛이 나타날 정도로 분극화할 때까지는 나타나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작용은 어떤 빛나는 광선의 특정한 변형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인 물리적인 빛의 편광과 유사하다. 그 힘으로 한번 반사하고 굴절한 광선은 어느 한 방향으로 자신을 반사하거나 굴절할 수 없게 된다. 빛의 물질 유체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오래된 방사 이론에 따라, 광선의 상태는 이제 광선 매개물을 구성하는 에테르의 모든 분자의 자극에 의해 추정되는 평행 방향을 따라가도록 유지되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심령적 요소의 분자들을 이끌어 그 축을 이런 양극화나 중력의 법칙에 따라 모두 중심점으로 모일 때, 말했듯이 이것이 물질과 영 모두에 같은 법칙이며, 모든 영혼의 온전한 의지는 하나가 되고 그 모든 기본분자를 통해 조화롭게 중심에 모인다. 이런 영혼 안에서 분극화되기 전의 잠자며 스며든 신성한 영이 중심으로 모여 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