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레오 톨스토이의 이 통찰력 있는 말은 내면을 반성하지 않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톨스토이의 말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잠시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라』 『톨스토이의 소설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삶의 한 단편이다』라고 19세기 영국 시인이자 비평가인 매튜 아놀드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공과 명성, 부유함, 이상을 열망한 레오 톨스토이는 결국 만년에 30년 이상 도덕적 철학자와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게다가 채식을 하며 채식을 알리고, 그리스도의 윤리적 가르침을 해석해 독실한 기독교인 평화주의자가 됐지요. 평화와 신의 뜻을 이룬다는 그의 개념은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같은 20세기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님은 1997년 7월 미국 LA에서 협회원들과 단체 명상에서 톨스토이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톨스토이는 수행자거든요.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대부분이 영적인 주제와 신에 대한 것이고, 아주 행복하며 긍정적입니다. 그의 책은 아주 좋으니 읽어 보세요. 읽지 않았다면 읽어보세요. 더 많이 읽어도 돼요. 그런 글들은 여러분에게 아주 좋아요.”
우리는 톨스토이의 『삶의 오솔길』 1권에서 종교와 인생, 죽음 등에 관한 톨스토이 철학의 통찰력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안과 온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 외에, 우리는 무형의 어떤 것이 우리 몸에 생명을 주며 몸과 연결된 것을 압니다. 이 무형의 무언가는 몸과 연결되어 있으며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무형의 어떤 것은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았고, 살아있는 만물에 생명을 주는데 이를 신이라고 부릅니다.
1. 하나님은 내면에서 사람을 알고 계십니다
모든 신앙의 기초는 우리의 몸과 다른 생물의 몸 속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 외에도, 보이지 않고 비물질이지만 보이는 모든 것에 생명을 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나는 내 안에 어떤 것이 있음을 알며, 그것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신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전부가 아니라 무언가에서 분리된 특정한 부분임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파악한 후, 인간은 보통 자신이 물질세계에서 분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가 보고 사는 땅, 이전에 그의 조상이 살던 곳, 그가 보는 하늘, 저 별들과 태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사람이 이 주제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거나 이 세상의 현인들이 그것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알게 되면, 사람이 스스로 분리되었다고 느끼는 근원은 우주의 모든 방향으로 뻗어가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며, 끝이 없는 시간도 아닌 다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사람이 이 주제를 더 깊이 명상하고 현자들이 그것에 관해 항상 믿었던 것을 알게 된다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물질계가 공간에서 어떠한 제약도 없으며, 어떤 실체가 아닌 오직 우리의 꿈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기에서 분리되었다고 느끼는 그 어떤 근원은 시간이나 공간의 시작과 끝도 없고 비물질적이며 영적입니다.
이 영적인 것이 바로 사람이 자신의 기원으로 인정하며, 현자들이 항상 불러왔고 지금도 부르고 있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신을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가능합니다. 자기 안에서 신을 찾을 때까지는 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내면에서 신을 찾지 못하는 자에겐 하나님이 없습니다. 내 안에 다른 모든 것과 떨어져 있는 영적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다른 모든 것과 별개로 같은 영적인 존재가 똑같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이 영적 존재를 안다면, 그것은 그 자체 안에 존재합니다. 내면의 이 영적인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릅니다.
사는 것은 당신이 아니며 당신이란 존재는 죽었지요. 당신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당신은 일해서 신의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 앞에서 모든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 앞에서 공덕을 얻지 말고 신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가락으로 만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기 내면의 신을 모른다면 자신을 알 수 없고, 우리 주위의 세상을 보고 듣고 만지는 자기 내면의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방법을 모르는 자는 영원히 동물의 수준에 머무를 것입니다. 세속적인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언제 태어났는지, 죽을 때 어디로 갈지 생각한다면, 나는 내가 나오고 향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에서 내가 이 세상으로 왔으며, 똑같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왔고, 또 가고 있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신은 사랑 또는 사랑이 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신은 이성 또는 이성이 신이라고 말합니다. 둘 다 진실이 아닙니다. 사랑과 이성은 신의 특성이고 자신의 내면에서 그것을 인식하지만, 신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신을 두려워해도 좋으나 사랑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최고는 내면에서 신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해야 하지만, 악이 없는 것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악이 없는 존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즉 하나님입니다. 만약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자신과 하나님이나 이웃을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신께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선 항상 일치합니다. 신은 고독을 사랑합니다. 신께서 거기 혼자 계실 때, 당신이 신을 생각할 때, 오직 신만을 생각할 때, 신이 당신 마음에 들어갑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여러 방식으로 말하지만, 하나님을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이해합니다. 사람이 두발로 걷는 것이 당연하듯이 신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이 다른 형태를 취하거나 완전히 억압할 수 있겠지만, 믿음이 없다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모를 수 있지만, 숨이 막힐 때 공기 없이는 살 수 없으며 공기가 부족한 걸 알게 됩니다. 신을 잊어버린 사람도 이와 똑같지만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