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3장
『지구에 빛을 주고 낮과 밤을 다스리기 위해 (하나님이 하늘에 두신) 별들에 관한 말씀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아마도 여기에 그들의 창조 목적이 설명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별의 본성만을 알지요. 하나님은 빛을 주고 지배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진 별을 창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과 다른 생명에게 초목을 주었다는 성경 말씀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철학자들의 견해와 일치합니다.
식물이 동물을 위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도 논리적입니다.
동물은 음식 없이 살 수 없으니까요.
별은 다릅니다. 별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그 선한 영향을 누려야 합니다.
「빛을 주다」와 「지배하다」는 표현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상의 생물이 그들에게 얻는 이익을 설명합니다.
나는 한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선을 계속 내려오게 하는 영향력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자신에게 흘러내리는 선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선과 친절을 자신에게 보내는 존재가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시민은 밤에 도둑에게서 자기 집을 보호하기 위해 왕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약간은 옳습니다. 그의 집이 보호되고 나라가 선택한 왕을 통해 이런 이로움을 얻을 때 그것은 마치 그 사람의 집을 보호하는 것이 왕의 목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모든 구절을 글자 그대로의 뜻처럼 우월한 것이 열등한 것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즉, 열등한 것에 특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월한 것의 본성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온 우주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굳게 믿고 다른 어떤 원인이나 목적을 묻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 것처럼, 창조된 것과 창조될 것, 모두 현재의 속성을 가진 만물의 존재 원인인 하나님의 뜻에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습니다.
천체와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착각하거나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리를 이미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보라, 뭇 나라가 두레박의 한 방울과 같으니라」
이제 자신의 본질을 천체, 별, 지성의 본질과 비교하면, 진리를 이해하고 인간이 지구의 물질로 만들어진 모든 것보다는 우월하지만 다른 존재들보다 우월하지 않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를 천체의 존재와 비교할 때 지극히 열등한 것을 알게 되며, 지성의 존재와 비교할 때 더욱더 열등합니다.
「보라, 그가 자기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니」라는 구절은 천사와 관련하여 사용되었고, 이는 우리가 믿는 것처럼 그들에게 시작이 있다고 영원한 삶을 가진 것은 아님을 나타냅니다.
우주의 영원성을 가정하는 사람들에게 천사의 존재는 모든 사건에서 신의 절대적 존재에 의존하며 따라서 열등합니다.
한 구절에서 「사람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더러운가」라는 말은 다른 구절에서 「하물며 흙 집에 사는 자는 어찌하겠느냐」라는 구절과 부합합니다.
그들의 뜻은 다음과 같죠.
가증스럽고 더러운 사람, 비뚤어지거나 육체성과 뒤섞여 그의 속성이 사방에 퍼진 자는 더더욱 하찮습니다.
「불의」는 「비뚤어짐」과 같으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리라」라는 구절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여기서 「사람」은 아담과 같은 의미인 인간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때때로 성경에서 이쉬로 표현되기 때문이죠.
「사람(이쉬)을 쳐서 죽인 자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고, 만물의 참된 본성을 이해할 때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 존재 외에는 없거나 다른 최종 원인이 없는 사물에 대해 우리는 만족해야 하고 어떤 최종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 달리 표현하면 신의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